올라갈땐 후회하고 내려와선 뿌듯했던 눈덮인 윗세오름
제주에 살면서 눈덮인 한라산을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라산을 가겠다는 언니가 있어서 좀 편한 맘으로 갔다. 혼자서는 사실 눈덮인 산은 자신 없으니까.
집에서 중문삼거리로 가니 버스가 오려면 1시간이나 남았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김밥을 사가지고 왔다.
윗세오름 매표소까지 가니 길이 얼어있고 눈이 쌓여있다.
스패츠하고 아이젠하고나서야 갈 수 있다. 산 입구에 아이젠을 꼭 하라고 안내판도 붙여져있다.
매표소에서 등산로입구에 있는 휴게소까지 가면서 난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결국 휴게소에서 달콤한 코코아와 과자를 먹으면 쉬고나서야 겨우 다시 일어섰다.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휴게소 앞 나무의자들이 파묻혀서 탁자에 사람이 앉아야 할 판이다.
등산로를 타고나니 눈이 쌓인 것을 측정하기 위해 묻힌 애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눈을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이다니...참 신기하군.
앞쪽으로 내다보니 오백나한이 보일듯 하다. 난 이미 몸이 천근만근이라 같이 간 언니와 멀어져버렸다.
누군가 산을 올라가면서 먹고 던진 바나나껍질을 까마귀가 신나서 쪼아먹고 있다.
날이 따스해서인지 눈이 조금 녹아서 더 미끄럽다. 난 길에 난 발자국만을 보고 그 위를 디디면서 갔다.
사실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는데...주변에 아무도 없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에 올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땐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눈위를 걷는다는건 몇 배나 힘든 일이다.
영실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힘들지만 풍경은 진짜 멋지다.
얼어붙은 폭포가 꽤 멋지다.
하얀색밖에 보이지 않는다.
윗세오름 가자마자 딴 거 안보고 휴게소가서 김밥, 컵라면을 꺼내서 먹었다.
진짜 진짜 맛있다. 산에서는 꼭 김밥과 라면을 먹어줘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ㅋㅋ
먹고나서 나와보니 눈이 날리고 있다. 날이 흐려져있다.
윗세오름 알림판도 눈에 파묻혔다.
휴게소를 뒤로하고 어리목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람에 따라 눈이 모양을 이루며 쌓여있다.
무슨 행성에 내려서 생명이 살지 않는 곳임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ㅎㅎ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길은 반쯤은 뛰고, 반쯤은 속도 줄이며 걷느라 발이 고생했다.
한 세월마다 몸을 꼬은 듯한 나무도 자세에 따라 눈을 품고 있다.
마지막 계곡 다리위에서 보니 강은 없어지고 눈이 그 자리에 덮여있다.
이번 가을에 이 곳에 서서 단풍이 너무 예쁘다고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윗세오름을 가면서 내가 미쳤지, 다시는 내가 여기를 안온다...이러면서 반쯤은 울면서 올라갔었다.
그런데 눈덮힌 산을 만나고, 윗세오름에서 라면먹고 김밥먹고 내려오니 또 기분이 좋다.
다음에는 눈이 덜 녹아서 나무에도 눈이 많이 쌓였을때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