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2022-5] 너무 시끄러운 고독

제주돌담 2022. 3. 23. 18:01

2022. 3. 18. (금) 읽음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문학동네

 

얇은 책. 금방 읽겠지 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체코의 대표적인 작가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리뷰도 남겼더라.

나는 이전에 읽다가 끝까지 읽지않고 덮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랐다.

 

소설이라고 하긴 너무 현실적이다 느껴졌다.

나치의 영향하에 들어간 체코를,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간 체코를, 그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당시의 체코가 제대로 된(기대하는) 사회주의냐 아니냐는 큰 상관없는거 같다.

 

폐지작업을 35년째 하면서도 책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물처럼 여긴다. 

한편으로는 책을 사랑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온서적으로 찍힌 책을 압축하는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한탸.'

맥주를 들이부으며 작업을 하지만, 작업의 속도도 양도 자신이 결정한다. 

소장의 잔소리도 핀잔도 무시도 경멸도 신경은 쓰이지만 그때 뿐이다. 

없애야 하는 책 중 일부는 자신의 집으로, 일부는 주변 박사에게 돈을 받고 건네주지만 여전히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책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압축하여 없애는 책의 꾸러미에 유명화가의 그림으로 싸서 새로운 예술품을 만든다. 작업 과정에서는 신경쓰지 못한 채 희생되는 쥐들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그가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성향상을 위한 기계발달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진다. 

다른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큰 압축기에 책을 집어넣는 반복노동을 하고, 압축기는 한탸의 사랑스런 고물압축기에 비해 몇 배의 능력을 보이면 일을 진행한다. 노동자들은 짧은 노동 이후 휴가와 여행을 이야기하고 우유와 콜라를 통째 마시고 있다. 작업복은 동일하다. 

한탸는 그 장면이 생산성만을 위한 무심하고 비인간적인 노동과정이라고 여긴다. 책의 내용도 표지도 들여다보는 이 없고 예술도 창조도 미도 없다. 속도는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야 한다. 과소비의 대명사처럼 우유와 콜라를 들이킨다. 

 

한탸의 작업장에도 새로운 노동자들이 오고 젊은 노동자들이 한탸의 고물압축기를 돌려서 일을 한다. 한탸가 일을 할 때와 달리 '고물' 압축기가 아니라 너무 쌩쌩거리는 압축기가 되었다. 한탸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서 주어진 노동과정에 자신을 맞춰야 하고, 자신이 사랑한 책을 더 이상 지킬 수도 바라볼 수도 없게 되었다. 자신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일 뿐...한탸는 퇴직을 하면 직장에서 사용하던 고물압축기를 사서 자신의 마당에 놓고, 아름다운 폐지더미를 만들려고 했으나 그 꿈을 포기하고 스스로 폐지더미가 된다. 손에 책을 들고 끝까지 놓지 않은 채 압축기 안에서 생쥐들처럼 책과 하나가 된다. 그는 압축기를 지나 폐지꾸러미를 만들면 책들은 어떻게든 굴레에서 벗어나보려 해보지만 결국 유골함처럼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분위기는 우울한 책이었지만, 노동과 소외에 대해 다시 생각은 하게 됐다.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 다른 곳에서 휴식과 재미를 찾는 노동자들에 비해 한탸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며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체코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이후로... 

이 작가의 책이 이토록 많이 읽히는 이유는 작가 소개처럼 체코가 소련 지배로 들어간 시기에 작품이 금서가 됐음에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오래전 체코 여행을 떠올리며 사진도 다시 뒤져보고 했다. 책을 읽다가 덮었던 때가 그때였기에... ^^

카렐광장, 카를교, 모라비아 등등

 

*37p: 상반되는 것들에 균형을 부여하려는 욕구에 의해 조화가 이루어지며, 세상이 통째로 휘청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의 투쟁 역시 여느 투쟁 못지않게 끔찍하다.

*75p: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운 이유다...) 

*98p: 잔혹한 한국 형리처럼 냉정해져야 해라고 쉴새없이 나 자신을 타일렀다. (한국형리가 왜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