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2023-22]잔류인구

제주돌담 2023. 12. 17. 15:07

2023.12.16.토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 숲 출판사

SF소설. 역시 재미있었다. 물론 아주 조금은 중간에 지겨웠는데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 되는 느낌이랄까.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어떻게 배척하게 되는지,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 중심에 경험 많은 할머니가 둥지수호자가 되어 있다. 
이해심 많고 포용력 넘치고 이기적인 면은 없는 모성애 철철 넘치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억눌린 자유를 갈구하고, 참아왔던 욕구를 조금씩 드러내고 싶어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있지만 의무였다고도 느끼는 나이든 연약한 여성이 부딪히는 세계의 둥지수호자가 된다. 여성만이 둥지수호자가 된다는 것의 전제는 아이를 낳아본 여성만이다. 그건 좀 동의되지 않지만...

소설 속 존재하는 콜로니(공동체)는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전히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있는 우주세계다. 기업들은 쓸모와 가치를 철저하게 생산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아이를 낳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생산성. 그러나 그 생산성에서 집안을 꾸리고 아이를 돌보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노동은 빠진다. 그래서 의무와 책임을 강제하는 공동체가 되어 있다. 서로간에 관계를 맺는다는 것으로 혼자만의 시간과 자유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 세계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수긍했는지는 알수 없다, 보여주지 않으니. 다만 오필리아는 70여년을 수긍한 채 억눌려 살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선택이라는 걸 하게 되고 제거되는 행성에 혼자 남기로 한다. 오필리아는 마지막 순간에 자유롭고 싶다. 여전히 갈등하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이주를 준비하면서 천박스를 제안하고 만드는 사람이 되면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나서지는 않는다. 영웅캐릭터가 아니어서 더 현실감있고 인정하게 된다.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다가 자기의 쓸모가 드러나는 순간에는 달라지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가는 '오필리아'다.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오필리아는 익숙한 이름이다. 움베르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선택한 죽음이라는 주체성과 꽃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오필리아의 모습이 28일 후 자유라고 외치는 행성의 오필리아와 겹친다.  마지막 순간, 행성의 오필리아는 자기 운명을 선택하게 된다. 죽음을 선택하지만 삶을 선택한 것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느슨한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 서로 다른 존재들의 공동체. 

P28-저들이 나를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서 멀리, 다시 우주로, 극저온 탱크로 보낼 것이다....... 또는 별 차이가 없이 나쁜 경우지만, 내가 자신들과 함께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자기들의 일정에 맞추기를, 명령에 따르기를 바랄 것이다. 

새롭게 나타난 전문가들은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권위를 강조하지만 실전도 없고, 배타적이다. 다른 존재가 보이는 지적능력과 사회운영방식에 적대감을 가지는 인간의 이기심과 지배욕이 가져오는 건 파멸이다. 반대로 혼자가 된 오필리아는 해방감을 느끼다가 심심함을 느끼고 기록을 하게 되고 예술과 창작, 놀이를 찾게 되고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방식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존재인 <종족>은 인간보다 높은 지적능력을 가졌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 

P126-그의 오래된 목소리는 의무에 대해 말하고, 솔직히 예쁘장한 목걸이를 그렇게나 많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지적하며 그를 괴롭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 창작의 기쁨, 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자식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이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만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인간문화 속 오필리아가 <종족>과 만나는 과정, 느낌은 우리 중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