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2024-07]더티 워크(DIRTY WORK)

제주돌담 2024. 3. 1. 00:41

2024. 02. 26. 월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한겨레출판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작년부터 읽으려하다 이제야 책모임에서 읽었다. 첨 제안했을 때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지만 모임에서 이 책을 읽길 잘했다, 읽을 만하다, 최근 책 중 가장 괜찮다는 개인적 평가를 남겼다.

더티 워크는 더러운 일로 해석된다. 더럽고 힘든 일. 그러나 더티 워크의 더럽다는 의미는 물리적으로 더럽다는 의미보다는 (사회적, 개인적) 도덕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측면이었다. 각자가 가진 도덕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자기손상과 훼손이 우울증으로 폭력으로 사회로부터 숨기로 나타나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수적인 노동이며 누구도 그걸 부정하지 못하지만 사회가 가진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그 일들을 떠맡아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발적 선택이라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치부하고 그들의 고통과 파괴를 못본척 하고 그들의 비도덕적 행동에 손가락질만 한다. 그들이 놓여있는 진흙탕은 그대로 둔 채 하얀색 운동화를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다.
문명화라는 말로 필요하지만 보고싶지 않은, 누군가 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하고싶지 않은 노동을 선량한 시민들의 일상에서부터 멀리 치워버리는 과정이 진행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기 마련이고 그 일은 나와 상관없는 노동이 된다.

드론전투원이 된 이들은 과거와 달라진 전쟁을 진행하는 중이다. 시민들은 전쟁과 멀어진다. 드론이 감시하고 확인하여 정밀하게 타격하기 때문에 민간인의 무고한 희생이 적어지고 아군(드론 소유군)의 피해도 적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음이 증언되고 있다. 그리고 달라진 전장에서 전투원이 되어 있는 드론 조정사들은 적이라고 말해지는 모호한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과 다르지 않음도 알게 되고 그들의 갑작스런 죽임에 충격 받는다. 불명확한 화면으로 살인을 결정해야 하는 판단의 무게는 드론전투원을 병들게 한다.
일부의 선량한 시민들은 내 입에 들어가는 요리의 과정으로만 만나는 육고기가 어느 순간에는 살아있는 동물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축산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동물복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축산과정의 부속품처럼 쓰이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부속품이 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작업에 대해 손가락질 할 뿐이다. 가해행위를 하는 피해자의 어쩔 수 없는 조건에 대해서 같이 해결하려 하진 않는다.
기후위기를 말하면서 시추선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뽑아내는 기름 없는 생활의 불편함은 감당하지 않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과거에는 생산을 위한 전기를 생산하는 국가적으로 필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가, 기후위기의 적으로 석탄이 지목되고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되는 식이다. 바뀌어야 하고 없어져야 하는 일들이지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아닌데 그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지탄받는다.

더티 워크를 안하면 된다고 말하는 건 참 쉽다. 양심에 따라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그게 옳은 길이고 박수를 보낸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 길을 선택한다면 세상은 달라졌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더욱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 반대로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선택이니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 그들이 그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진흙탕을 느끼면서도 늪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제적 빈곤, 출신지역, 차별받는 인종과 성 이라는 환경은 그들의 탓이라고 해야 할 수는 없지 않나
그 일에서 퇴장할 수 있는 권력과 다른 선택지를 가진 더티 워커는 거의 없다.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노동이면서 더티 워크를 그들에게 시킨 것이다. 그 일을 하게 만든 우리 모두가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 그러나 더티 워크마저도 노동의 세분화에 따라 나눠지면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업무는 더티 워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어떤 생명을 해하는 일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도축과정에서 건을 쏘는 경우만 죽음에 관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경우다.

책임은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지 책임을 분산시켜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약자무리 또는 일부의 약자가 행위의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된다.

힘 없는 사람은 더러운 일을 직접 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은 남에게 시킨다는 제임스 볼드윈의 말로 페이지를 열게 된다. 언제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당연한 말이라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느낌이 남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적일 때는 당연한 말을 잊고사는 이들을 위해, 그 힘이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쓴 말이라 느꼈다.
힘은 물리적 힘만을 말하지 않는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군사권력, 사회권력 뿐 아니라 대중적 힘으로 나타나는 무시와 무관심도 힘이다.

들어가며, 나가며 만 읽어도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는 있다. 이해의 폭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래서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들어가며 를 읽어서 방향을 잡고, 나가며 를 읽고 책을 덮으며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아주 친절하게 끊임없이 저자는 하고픈 말을 하고 있다. 책 내용의 일부는 다른 기사를 통해서 이미 접했던 적이 있었고, 일부 내용은 반복되기도 있기도 하다.

p9.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때로 추악하고 폭력적이다. 우리는 어쨌든 그 일들이 제대로 처리되길 원하는 동시에 처리되는 장면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P26. 더티 워크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들의 행위를 지속시키는 권력의 움직임과 복잡한 공모 관계를 감추는 데 유용하다. 또한 누가 그 일을 맡을지 결정하는 구조적 차별이 은폐될 수 있다.

P27.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는 사회에서는 손을 더럽히는 짐을 누가 떠맡고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는 혜택은 누가 누리는가 하는 문제 또한 경제적 특권에 따라 결정된다.

P57. 전환치료병동에서는 위법 행위를 목격하는 것부터가 위험했다...눈앞에서 학대가 발생하는 경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해지는 방법은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고 해리엇은 말했다. “목격자가 되지 마라. 맡은 일이나 하다 가라.”

P85. 나는 시스템의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시스템의 도구였을까. 난 어느 쪽에 섰던 것일까. 때로는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P103. 흑인 경찰관과 마찬가지로 흑인 교도관은 공감하는 마음을 억누름으로써 자신의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는 추가적인 압박을 느끼기 때문.

P130. 언론의 분노가 사건을 촉발한 정책을 만든 상급 교도관들이 아니라 하급 교도관들을 향하는지 의아해했다. 이러한 그의 의문은 타당하다. 그는 대중이 정말로 학대 문제를 우려한다면, 플로리다주는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패한 시스템 속에 선량한 교도관들을 떠미는 대신 사람들이 교도관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어 할 만큼 교도관들의 급여를 올릴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미국의 민간 교도소는 더욱 그러함. 공공성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P195. 도덕적 외상은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산업재해다. 더티 워크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재해를 당한다.

P207. 두 전사 중 어느 한쪽에 완전한 면책권을 부여하고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살인자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확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인 데다 자기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P230. 헤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병사의 고통을 못 알아보는 시위대의 무지만이 아니었다. 헤더는 우월감을 내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거슬렸다. 이것은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된 인상이었다. 코드 핑크 시위대에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많다.

P248. 어떠한 사회질서에서든 권력 격차가 존재하는 한 그 질서의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부정한 시스템의 매개물이자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권력이 없다는 그 사실이 권력을 행사하려는 욕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강제적인 힘에 속박되기 때문이다. 그런 힘 중 하나가 경제적 곤경이라는 압력이다.

P289. <정글>을 읽고 분개했던 사람들은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더러운 고기를 먹을 위험에 분개했던 것이라고 싱클레어는 유감스럽게 말했다.

P323. 교정시설의 교도관, 드론 전투원, 그리고 휴스가 그의 글에서 논한 모든 종류의 더러운 노동은 국가가 위임했다. 즉 국민이 그들의 고용주이며, 이 점에서 더러운 노동자는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런데 모든 현대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더티 워크가 한 가지 있다. 여기서 시민은 고용주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그 노동을 뒷받침하고 이익을 취한다.

P329. 소고기 정육공장에는 도축 노동이 내장 뜯어내기, 간 걸기, 머리 조각내기 등 실로 다양한 하위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다. 즉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자잘하게 나뉘어 있었다.(그래서 소를 실제로 죽이는 것은 노킹 담당자뿐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P341. 200011, 직업안전보건국은 인체공학 규준을 채택했고, 400만 노동자가 직업적 부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01년 조지 W.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 공화당 의원들이 뉴트 킹리치의 미국과의 계약이 한 조항을 발동하여 정부 규제를 신속히 검토하고 투표를 통해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반복성 긴장장애에 노출된 노동자는 직업안전보건법의 포괄적 의무조항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인된 위험이 없는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고용주의 의무로 규정했지만...

P381. 뉴스에는 죽은 바닷새와 해양 포유류의 영상이 거의 매일 보도되었다. 시추선 노동자의 얼굴은 단 한번도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세라는 노동자가 그토록 눈에 띄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P383. 시추선 노동자가 더러운 현실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이 정작 자기 차에 기름을 넣을 때는 그들 자신이 더러운 현실에 가담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스티븐도 세라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이 그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다들 잊으려고 하죠.”

P392. 더티 워크는 특정 계급에게 불균형하게 배정될 뿐 아니라 특정 장소에 집중되어 있다. 교도소는 주로 시골 게토, 정육공장은 외딴 산업 단지에 지어진다. 누구에게나 눈엣가시인 정유공장과 시추선은 캘리포니아주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들어선다.

P396. 시추선의 산업재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문제다. 그러나 사고율이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국가위원회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한 딥워터 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의 동일한 기업이 미국과 유럽 양쪽에서 조업하는데도”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발생한 해양 시추 중 사망자는 미국이 유럽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P399. “시추선에서 일할 때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고를 우리가 일으킨 거라고 생각했어요.”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더티 워커도 똑같은 메시지를 듣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그들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공정 안전(process safety)’이라고 믿었다. 공정 안전은 비용 절감, 조업 속도 최대화처럼 시스템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정이 누적된 걸과다.

P411. 내가 생각하는 생존자는 시추선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에요. 얼마나 겹겹의 영향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요. 가족이 영향을 받아요. 그러니까, 폭발이 일어나면 남편만 다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폭발은 널리 계속 퍼져나가는 거예요.    --> 2014년 영화 <그레이트 인 비저블> 딥워터 사고.
P435. 더티 워크에는 여러 가지 필수 속성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타인에게 또는 자연 세계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으로, 더티 워크는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거나 낙인찍혔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혹은 자신의 핵심 가치를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피해를 입힌다.
P440. 어떤 노동이 더티 워크가 되려면 선량한 사람들’, 이른바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더럽다고 여겨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려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P462. 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