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고 반성하면서...죄송해요, 할아버지.
콩을 심으려면 밭을 갈아야한다며, 뒷집 할아버지가 밭을 갈아주신다고 오셨다.
밭 주변으로 모종을 이미 심어놨으니 테두리쪽으로는 갈면 안된다고 몇 번 말씀드렸다.
수박, 수세미, 오이, 호박 모종을 몇 개씩 얻어서 심어놓은 터였다.
할아버지가 갈고난 곳에 드러난 돌멩이를 치우고나서 허리를 펴는 순간,
악!! 눈에서 불이 번쩍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소리가 나왔다.
나의 당부와 부탁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밭 테두리에서 한치의 공간도 없이 밭을 엎어버리고 있었다.
이미 모종은 흔적도 없어졌다.
혹시 몰라서, 모종앞쪽으로 돌멩이들을 갖다놨었는데 그것마저 밀어버리셨다.
나도 흥분해서 할아버지께 모종이 같이 갈려버렸다고 하니...
다시 사서 심으면 되지, 하신다. 쿨하다.
근데 문제는 내가 쿨하지 못한거였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화가나고 일하기 싫고 만사가 짜증나는 감정이 슬며시 올라온다.
아마...지난번에도 할아버지가 내 밭을 그냥 갈아버렸는데
그곳엔 힘들게 심은 마늘이 있었고 양파가 작지만 꼬물거리며 자라고 있었다.
내가 집을 오래 비운사이 할아버지는 잡초가 많은 곳을 치워주신다고 하신일이었다.
속상했지만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었다.
오늘, 그 일까지 생각나면서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
도와주신다고 한 건데, 그냥 실수한건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얼굴은 굳어지고...
할아버지의 고의도 아니었는데...그렇게 할아버지와 일을 끝내고 헤어졌다.
집에와서 차 한잔하고 몇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가 왜 그런 감정에 빠졌는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리고나서야 반성하고 할아버지께 죄송했다.
이미 지난 것에 집착하면서 현재 내 앞에 있는 고마운 사람에게 상처준 것 같아서 반성했다.
내일 할아버지께 맛있는거 갖다드리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방긋 웃어드려야겠다.
아~~언제쯤 이런 반성에서 벗어날까?
도를 더 닦아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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