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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2026-1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제주돌담 2026. 7. 9.

2026.7.7.화.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이민아 옮김/박한선 감수/디플롯

책 제목의 ‘다정하다’는 일상과 개별적 관계에서의 태도를 넘어선 문제를 제기한다.
흑인과 백인의 버스좌석이 분리되어 있고 공원급수대가 분리되어 있던 시절, 백인학교와 흑인학교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1971년 인종분리학교는 위헌이라고 판결났고 형식적인 통합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교실에서 통합되지 않았고 인종 집단 간 적대감이 넘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을 구성하고 팀이 문제를 해결할 때 점수가 배정되는 방식으로 흑인 학생, 또는 또래집단에서 이해받지 못한 아이들의 설 자리가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직소모형.' 상호의존적 수업방식을 시도했다는 이야기.

그렇다. 이 책은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은 인류의 역사로보나 여러 진화과정을 보나 선택해야 할 살아남기 방법이 아님을 말한다. 다윈이 그 말을 사용한 건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고 한다.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써왔는데 그것보다는 적자생존이 더 정화하고 편리하다며 '자연선택'의 대안으로 이 개념을 제시했다고 한다. 

협력, 친화력, 다정함 등은 우리 종(인간 종 중에서도)이 생존하는데 핵심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협력할 때 친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다정함의 이면으로 친구가 아니라고,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잔인해지는 그 본성도 진화해왔다고 판단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인간종이라고 볼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들이 있음에도 왜 지금까지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저자는 나름의 해답을 말한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보노보와 개처럼 관용적일수록 사회의 상호작용에서 얻는 보상이 커지는 경험들이 쌓였다는 것이고, 억제하고 관용을 베푼 후 돌아오는 보상을 계산했다는 것이다.
즉 호모사피엔스가 가진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했는데, 늑대가 개가 되고 돼지와 양이 가축이 되는 과정에 가축 동물들의 외양도 달라지고 이런 가축화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모사피엔스 인간도 그러했다.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격성과 친화력을 보면 낯선 존재에게도 위협감을 가지지 않고 친화력을 보이는 보노보가 훨씬 더 협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먹을 거리를 획득하는 것도 함께 문제를 풀어서 차지한다.

보노보와 달리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은 우리 무리에게 갖는 공감과 친화력이 미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태도다. 그래서 백인은 흑인을  '비인간화'하여 가축처럼 표현하고 동물에 가깝다고 말하고 비하한다. 흑인만이 아니라 원주민에 대한 태도도 그러하다. 그렇게 함으로 도덕적 배제가 나타나서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상대를 폄하하고 배제하며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되니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가 발생한다. 즉 흑인이나 원주민 등에 대한 태도는 차별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가 자기가축화 과정에서 발생한 옥시토신 시스템의 변화 때문이라 한다. 옥시토신은 포옹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자기가축화 과정에서 공격성도 반대로 증가하는데 우리 무리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 더 강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위협받을 때 보이는 폭력성이라고 본다. (호르몬이 여기서 왜 등장??)

저자는 우리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더 끌리도록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사회장(사회적 행동 또는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적 합의)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고 한다.
친화력, 협력, 협동, 다정함은 상대에 대한, 특히 낯선 존재에 대한 적대감이나 두려움, 경계심이 없을 때 더 강화된다. 배타성을 낮추고 공격성을 낮추면서 다정함을 높이려면 결국 무리를 넓히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 잘못된 신종 편견 문화들도 다정하지 못하게 하는 데 한 몫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존재간 접촉이 잦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도시는 그런면에서 최악이라고 한다. 사람간 접촉을 막기 때문이다. 교외와 시내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의 계층이 다르고 적대적 건축을 통해 노숙인이 쉬지 못하는 의자를 만든다. 이 지점에서 영국 여행기에서 나왔던 골목장면이 생각난다. 사람이 오가고 머물고 이야기가 흘러다니는 폴란드 자기 고향의 골목과 스쳐지나가는 통로일 뿐인 영국 자본주의 사회의 거리를 비교했던.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정리는 재미없게 했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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