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2.(토)
정보라/아작
책이 발간된 지는 좀 오래됐다. 2017년에 초판이 나왔고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이 책을 더 많이 읽게 만들었다고 본다.
저주토끼는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건 지난 번에도 확실히 읽은 기억이 있다. 다른 단편은 어떤 건 읽은 거 같고 어떤 단편은 첨 보는 느낌이다. 이런 것들로 추정하면...나는 이 책을 읽은 거다. 하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이 책만이 아니라서 책이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책은 제목은 생각나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거나, 내용 중 어떤 것에 꽂혔는데 제목을 모르겠다거나 뭐 그런 식이다. ㅎㅎ
‘저주토끼’는 당하기만 하는 사람, 억울함을 가진 사람이 다른 이에게나 세상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내용으로 채워진 소설집이다.
너무나 이쁜 토끼모양의 전등갓을 통해 저주를 내린 할아버지는 자신도 저주를 받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걸 모르고 찾아오고 손자인 나는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간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저주 이야기를 반복하여 듣게 된다. 저주는 직접적 접촉을 통해서 강하게 내릴 수 있고 그 저주는 당사자가 직접 겪지 않아서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억울한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대를 저주하기 위해 노력한 할아버지.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손자 곁에 머문다. 상황상 저주를 내리고 싶은 마음과 미움은 이해된다. 그런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난 그렇게 했을까는 또 다른 문제지만.
화장실 변기 속에서 내가 자란다는 단편 ‘머리’. 내가 먹은 것을 고스란히 받아 안는 변기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아주 작은 머리만 있다가 나의 냉대, 멸시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면서 젊은 나로 태어난다. 그리고 늙은 나는 변기 속으로 쳐 박혀서 사라진다. 이건 정말 섬뜩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게 약간 찜찜할 정도로.
죽은 자신의 육체를 떠나면서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
생리약을 많이 먹어 여성 혼자 아이를 잉태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아이의 아빠를 구하지 못하여 인어공주처럼 아이는 태어나지마자 형태가 없이 물이 되어버린다는 ‘몸하다’.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다거나 동성커플이 아이를 입양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아니겠지?
나의 1호,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 반려기계가 더 이상 가동하지 않자 여러 고민 끝에 1호를 원 업체에 보내려다 나의 사랑이었던 1호 기계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 내 사랑’. 1호이자 동기화된 다른 기계가 말한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싶었습니다.” 인공반려자라고 데리고 와서는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몇 년이 지나면 버리고 폐기하는 상황에 1호는 반기를 들었다. 인간이 죽임을 당한 이유였다.
황금의 덫에 빠져 자신을 도와달라는 여우를 배신하고, 부인과 아이까지 죽게하고 결국 자신도 죽게되는 ‘덫’. 덫에 빠진 건 인간이었다.
이유도 없이 잡혀와 정기적으로 특별한 존재로부터 몸의 골수를 뺏기며 온 몸에 흉터가 생겼다. 그런데 그 흉터가 하나의 힘이 되어 다른 존재가 몸 속에 생기게 된 그는 목숨을 걸고 특별한 존재로부터 도망쳤지만 인간들의 욕심에 이용당하고 끌려 다니고 괴물취급 받는다. 한 마을의 질병이나 미신 때문에 자신이 끌려가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이 되었던 맹인 소녀를 만난 후 특별한 존재와 맞서게 되었고 이겼지만 맹인 소녀는 물거품이 되고 마을은 풍비박산이 된다. ‘흉터’는 그의 몸에만 생긴 게 아니라 마음에도 세상에도 생겼다.
‘즐거운 나의 집’은 결국 아무도 즐겁지 않았다. 단란한 부부였다 생각했지만 남편은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고 결국 사망한다. 어렵게 마련한 집은 온갖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지하실에서 만난 흐릿한 형체는 정확한 형태를 가진 아이가 되어 유일하게 그녀를 웃게한다. 밖을 나갈 수 없는 아이로 인해 그녀도 바깥을 잘 나가지 않는다. 즐거운 나의 집은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 아이와 그녀를 붙잡았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황금배의 주인일까, 공주인 그녀일까. 저주로 눈이 멀었다는 왕자는 공주의 용기로 시력을 되찾지만 인간의 욕심을 버리지 않아 자멸하게 된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그녀의 용기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왕자가 남편이 되고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생겼다는 설정은 맘에 썩 들진 않았다.
폴란드가 배경이라는 것만으로 맘이 살짝 흐뭇했던 ‘재회’.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그와 한국에서 폴란드로 공부하러 간 그녀. 둘 다 그의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그는 할아버지 외에도 많은 이들을 봐왔고 그녀는 그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폴란드어가 소설에 몇 마디 적혀있다. 나치 시대에서 살아남은 할아버지는 언제나 대피준비를 하며 긴장된 삶을 살았지만, 그 시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죽어갔다. 그리고 영원히 그 시대에 남아서 가끔 현실에 나타났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그 시대가 사라졌다는 충격을 안겼고 자신 또한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가지게 된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다. 고통을 통해 생존함을 알게 된다고 해야할까. 그의 특이한 성적 취향도 거기로부터 발생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한국으로 갔다가 다시 폴란드로 가서 그를 만나게 된다. 재회한 그들의 밤이 지나고 그는 스스로 목을 맸고, 그녀는 혼자서 목 맨 그에게 애썼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정보라의 이 소설집은 모두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죽음과 같이 있거나 죽음을 향해 가거나. 그런데 그 죽음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SF소설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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