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3.월요일
한승태/시대의 창
한승태 작가의 노동에세이 3번째이고,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이 소제목으로 붙어있다.
첫 번째 노동에세이는 퀴닝(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두 번째 노동에세이는 고기로 태어나서(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게에서 기록하다)이다. 세 권 모두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고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세 번째 노동에세이는 400페이지로 조금 두껍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자동화 등 대체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인 직업 중에서 가능한 평범하고 역사가 오래된 직업을 골라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콜센터 노동자, 물류노동자, 요리노동자, 청소노동자가 되어 살아온 시간들을 책에 가득 담아놨다.
일단 저자의 글은 재미가 있다. 비유가 정말 맛깔나고 씨익하고 웃는게 아니라 킥킥 깔깔하고 웃게 만든다. 비록 내가 생각한 (심각한)노동의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에세이는 아니지만 가볍게 지나가며 노동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노동자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이 결국 자본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나는 저 노동들의 과정을 우리가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저 노동을 하는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수천가지의 기술을 경험을 통해 축적하고 익히고 발전시키고 있었다. 웍질이 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너무나 잘 되던 웍질은 튕겨져 나간 밥풀과 재료만큼이나 많은 연습과 그 과정에서 힘을 빼는 연습이 되어서 가능했으리라. 물류노동자들이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아주 구체적인 노동과정은 정말 혀를 내둘렀고 정규직과 임시직이 같은 일을 누구를 중심으로 사고하여 처리하는지도 다시 확인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스텡청소와 유리청소는 전문성이 없으면 못할 일이라 확신했다.
나이가 많아서 못들어가는 노동현장, 나이가 적어서 못들어가는 노동현장, 여성이라서 버티어내는 노동현장, 일터에서의 권위와 위계 등등 이야기 나누자면 참 할말이 많은 책이다. 어떤 기준으로 이 책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거 같다. 한승태 작가가 매일 자신을 검색한다고 하여 태그했다. ㅋ 원하는 그 독극물은 없을거 같으니 이제 그만 검색하시길.
p19. 직업소개소의 소멸은 노동자 계층의 지역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사랑방 역할을 하던 지역공간들이 이래저래 사라지고 있다.
p55. 이럴 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극도로 화가 난 고객이 갑자기 조용해졌을 때... 분노에 눈이 뒤집힌 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상식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자신이 느낀 좌절감을 담아낼 수가 없다. -> 너무 생생하지 않은가. 이런 식의 글이 참으로 많으니 우울할 때 이 책을 읽어보시라.
p57. 그 눈빛을 받으면 요도까지 내려왔던 소변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 방광으로 급히 되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 노래가 생각나는 구절. ㅎㅎ
p60. 감시라는 게 재밌게도 타인이 나를 나보다 더 빈틈없이 파악한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놓으면 이후에는 굳이 감시할 필요가 없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스스로를 감시한다. -> 가장 무서운 것이 스스로 착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p61. 우리가 한 팀이라면 지하철 좌석에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된 사람들도 한 팀이었다. -> 내가 일하는 곳은 어떨까.
p62.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당신은 어떠냐고 묻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 이런 일이 요즘은 자주 있다. 그런데 이런 기회는 잘 생기지 않는다. 내가 그러고 싶다고 언제나 생기는 시간이 아니니까...
p102.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런던통신 1931-1935) -> 위로가 된다.
p176. 내 몸이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때는 남은 거리가 멀다, 힘들다가 아니라 불가능으로 다가온다.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은 거리가 얼마가 됐든 상관없이 포기한다. 지체없이 포기한다. -> 그래서 희망을 말하고 가능성을 말하나보다.
p213. 어차피 그만둘 사람이면 그래서 막 대해도 상관없는 거고, 계속 있을 사람이면 누가 서열이 높은지 확실하게 보여줘야죠...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은 '화'가 중심에 자리잡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래, 할수 있어!'가 아니라 '씨발 다 덤벼!'류의 자신감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과로와 야근으로 점철된 주방생활을 '나 아니면 식당은 안 돌아가!'하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 버티게 만드는 슬픈 주문이다. 그러나 나 하나 없어도 식당도 세상도 잘 돌아간다.
p222,223. 주방에선 재료나 도구 위치를 바꾸는 게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방에서 재료, 도구의 위치는 조리법의 일부다...요리사처럼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도구가 손에 바로바로 잡히지 않으면 당황하고 짜증부터 난다. 그렇게 위치를 바꿔서 얻는 효과가 무엇이든 간에 길게 보면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가 더 크다. -> 일터에서의 권위는 참 다양하게 나타난다.
p248. 나는 막연히 이들이 이 업계에서의 경력을(포르노영상찍기) 부끄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다들 쉬쉬하며 숨기고 싶어 할 거라고 말이다.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이 봐주기만 한다면, 보고서 즐거워한다는 확신만 든다면 그들은 더 적은 돈, 더 긴 시간도 얼마든지 감내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고는 철저히 낭비되어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의 노력이 이 세상 어디로도, 어느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괴로워했다. -> 노동의 소외는 이런 것이다. 내 노동이 낭비되어 버리는 것.
p272.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는 것만큼 그를 참담하게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은퇴는 꿈꿔왔던 '인생 2막'이 아니라 일종의 임사 체험이었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김영민, 어크로스) -> 이런 시간이 내게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때가 다가온다. 무섭다...준비해야한다.
p377. 최악이라 여기던 시절에도 한승태는 별 탈 없었다. 언제나 그에게 침대 옆자리와 식권 절반을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들 덕분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인가? 나는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나?
p380. 무엇이 옳다, 그르다 외쳐서는 어떤 이의 가슴도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지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한승태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바로 그 지점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주장만으로는 공감과 설득을 할 수 없다. 내게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옮겨가야 한다.
p388. 죄수들이(굴라그 라는 러시아 강제수용소) 가장 많이 적어놓은 말이 러시아어로 '자쳄'이라는 단어였다고 해요. 이게 영어로 번역을 하면 'why'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바로 '왜'라는 말이었어요. 왜? 도대체 왜? 도대체 나는 왜? 도대체 저들은 왜? 도대체 우리는 왜? 저는 만약에 이 식용 동물들이 말을 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에게 '자쳄'이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왜 를 붙들고 가야한다고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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