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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2023-21]오웰의 장미

by 제주돌담 2023. 12. 22.

2023.11.19.(일)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출판사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오웰의 장미
책 표지는 자칫 촌스러워 보이는 큰 붉은 장미와 녹색가시와 줄기가 그려져 있다.

읽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책에 담긴 주제라고 해야 하나.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리좀적 글쓰기를 보여준 책이라 어려웠다. 오웰, 장미 두 가지 소재로 출발한 이야기는 러시아, 자연의 정치성, 그림 속 계보, 오웰의 책, 여러 전쟁, 과학사, 이데올로기, 장미와 석탄에 관한 노동 등 어디로 갈지 예상할 수 없는 글들이 이어졌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고 정말로 잘 몰라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글도 있고, 너무 빤한 것 같은 이런 내용을 이리도 세세히 쓰고 읽어야 하나 싶은 내용도 있었다. 참 멋진 표현인 문단들도 있었고, 지금 현실에 가져와도 똑같다 싶은 해석도 있었다.

오웰의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었고, 리베카 솔닛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난 오웰을 추앙하진 않지만...책을 읽고 나니 스코틀랜드를 가보고는 싶어졌다.
로즈힙, 장매 열매는 처음 알았고 나중에 시골에 살게 되거나 마당이 생기면 심어보고 싶다.
난 옛날 장미만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장미는 봄에만 핀다고 생각했고, 간혹 가을에도 피어 있는 장미를 보면 기후위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그런 종자도 있다는 사실.

P27. 장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자,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계량 가능한 실제적 결과가 없는 시간들이, 정의와 진실과 인권과 세상을 변혁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어떤 사람의 삶에, 어쩌면 모든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P42. 삶에서 주된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으며 그러는 것이 필요하다.

P48.
역사적 시간과 자연의 시간(순환적 시간)...인간 존재는 그 두 가지 시간 모두를 살아간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이곳 또는 저곳의 시민으로서, 의견과 신념을 지닌 정신의 소유자로서, 하지만 동시에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생육하는 생물학적 독립체로서, 꽃과 같이 덧없는 존재로 산다. 감정은 신체적인 두려움과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또한 이념과 참여와 문화로부터도 생겨난다.

P80
석탄은 어디에나 있었다. 석탄은 일이었고 먼지였고 연료였고 스모그였고 위험이자 질병이자 죽음이었으며 거의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의 밑에 깔린, 어디에나 있는 풍부한 재료였다.

P86 2009
년 과학자들은 수 마일에 걸친 고대의 숲을 아래서부터 볼 수 있는 한 북아메리카 탄광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나뭇잎의 잔재, 가지들을 뻗쳐내는 굵은 둥치, 뿌리, 그루터기 같은 것들이 탄광 천장에서 위험하게 떨어지곤 했던 것이다. 적어도 몇몇 고아부와 엔지니어에게는 자신들이 고대의 세계를 파헤쳐 현재의 세계에서 태우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는 의미이다.(멋진 표현!)

P173-174
리좀의 어느 지점이든 다른 지점과 연결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라고 그들은 선언했다. 이것은 나무나 뿌리가 한 점을 지정하고 하나이 질서를 고정시키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일종의 우드 와이드 웹이라 할 지하의 균근 네트워크가 숲의 나무들을 서로 서로 연결하며 영양분과 정보를 순환시켜 숲의 나무들을 개별적인 나무라기보다 서로 소통하는 공통체로 만들기도 한다.

P183
다윈주의는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홉스주의적 해석을 통해 여과되면서 갈등과 경쟁을 강조하게 되었고, 다윈 자신도 진화를 종의 구성원들이 최소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투쟁으로 묘사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층 더 왜곡되어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개인적 이기심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고 심지어 선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변질되었다.

P198-199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진실과 언어에 대한 공격은 가혹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모든 권위주의는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이다.

P208-209 버밍엄은 인클로저가 주변 전원을 구획 지어 점점 더 인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동안, 그런 정원들은 점점 더 자연스럽고, 인클로저 이전의 경관처럼보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정원들의 또 다른 특성은 이 에덴동산처럼 펼쳐진 공간에 누가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제한하는 수단에 있었다.

P213 전원을 휴식의 장소로 본다면, 당신은 아마도 농장 노동자가 아닐 것이다.

P222 웨슐러의 글에서는 페르메이르 그림의 평온함이 전범재판소의 판사에게 가해자들과 희생자들의 잔혹한 이야기를 들어야했던 오랜 나날을 견뎌낼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 경우에 그림이라는 피난처는 잔인함과 불의와 고통이라는 현실과 싸우러 나갈 힘을 얻게 해준다. 반면 이 경우에는 정원과 컨트리하우스가 불편한 현실을, 그리고 자신들도 그에 공모하고 있음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된다. 정원은 후퇴(피난처)인 동시에 공격이다.

P224 깊이 은폐된 노예 제도와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겉보기에는 너무나 상반되어 거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는 장소들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조종, 노동, 생산, 정치 등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비정치성은 그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었다.

P277 우리가 담장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 있으라는 것이다.... 만일 제대로 서 있다면 좋은 담장이고, 그것이 어떤 목적을 수행하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담장이라 해도 집단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다면 허물어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형식은 기능과 분리되지 않는다. 아름다움 또는 추악함이란 그저 외관보다는 그 의미, 영향, 함의 등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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