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2024-0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by 제주돌담
2024. 1. 21.
2024.01.20.(토)
엄기호 지음/ 나무연필
분명히 지난번에 읽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고 정리되지 않아 결국 다시 읽었다.
그리고 책을 뒤적이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음을 확인한 결정적 장면...오타를 연필로 수정해놓은 내 글자. ㅜㅜ
피해자이자 증언자의 말은 날것 그대로의 정보이기에 전문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는 말로 이해되기도 하고, 정반대로 피해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옳다는 판단도 있다. 필자는 고통을 겪는 이들이 그 곁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보면서 당황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감사해하는 지위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참사현장에서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내 고통을 알지 못한다는 선을 긋는 태도였다고 한다.
고통을 겪는 이들이 느끼는 자기 고통의 절대성이 있기 때문에 비교를 해서도 안되며, 비교할 수 없으며,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정해두고 '피해자답지 않음'을 말한다. 그것은 고통을 겪는 이들간에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고통이 젤 크다. 그런 조건에서도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과 '고통의 절대성' 자체가 공통점으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엮는 것은 세 가지 차원으로 가능하다. 서로에게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것. 사회적 영역에서는 노동-기여를 통한 인정이고, 사람관계에서는 ('곁'이라고 부르는 영역) 친밀감이며, 내적 영역으로는 자존감이다. 존재감은 결정적으로 대체 가능하지 않을 때 가지게 된다. 존재감은 무엇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누군가로 부터 대체된다는 것이 주는 허무감과 위축감은 존재감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세 영역에서 다 나타날 수도 있다.
고통을 겪는 이가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자이지만 당사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곁에서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어려운 결과.
P34. 가치가 있다면 고통을 겪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고통일 뿐 그 안에서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다.
--> 맞다. 그래서 우린 고통에 의미를 자꾸 붙이게 된다. 그래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P40. 자기에 대한 앎이란 그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겪는 자기를 알고 자기를 다루는 과정이지 고통의 원인을 알고 제거해가는 것이 아니다.
P57.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하기 바랐다...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을 하면 그 고통이 너무 별 것 아닌 게 되어버려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다른 말로 설명해보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말로 표현되는 순간, 보통 노인들이 다 겪고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고통이 되고 말았다....고통은 말로 묘사하고 설명할 수 없다.
--> 아프다는, 불편하다는 아빠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무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불편하다고만 하는거 같아서 자꾸 지적질 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P76. 다른 사람과 함께 모색해야 할 일은 고통의 사회적 측면을 해결하는 것이다. 실존적 측면을 '사회적'으로 나누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고통의 실존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그 고통의 사회성을 환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 혹은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
--> 모든 것을 사회적 문제로, 구조로만 환원할 때 개인의 특성, 상황, 개별성은 사라진다. 고통이 평평해지고 일반적이 되며 상투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개인에게 계속 남는 실존적 고통은 개인의 몫이 된다.
P89. 피해 당사자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것은 각자의 사연을 개별적이고 고립적으로 간주하여 '자기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게 하는 중요한 효과가 있다. 또한 당사자로서 피해의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뛰어넘는 용기를 줄 수 있다. 피해의 '수치심', 즉 자신이 무능해서 당했다는 감정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나의 잘못, 나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갇히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고통의 이유가 되는 것들은 오롯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P97. 고통의 사회적 측면을 인식하고 동시에 주변과 공감하고 더구나 실존적 측면을 응시하는 것, 이 세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는 없다.
--> 주문으로 자기를 세뇌하는 것 말고는 없다...
P176. 장애인, 뚱뚱한 사람,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비정상적 존재'로 분류되는 사회적 소수자...이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할 존엄이 없다. '예의바람'이라는 가면 놀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 현실, 혐오는 그래서 또 넓어진다.
P204. 결국 피해자들은 두 가지 가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하나는 피해자답게 모든 것이 무너져 있는 존재를 연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고통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두 가지 차원에서 언어를 가질 기회가 봉쇄된다. 피해자를 오로지 '고통'으로만 재현함으로써 그가 피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하는 것, 즉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