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1.(목)
마쓰모토 하지무 지음, 김현욱 옮김 / 글항아리
부제목-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와 어느 유가족의 분투
두껍다 생각하면서 빌렸는데 422페이지의 책이었다. 그래도 집에서의 밤 시간을 쪼개 4일 만에 다 봤다. 이 책은 유가족의 시선으로 (본인 표현으로)프리랜서 작가가 사고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되면서 2018년에 썼다. 사고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경과와 쟁점, 생각해볼 지점들을 재정리하기 위해 언젠가 다시 읽어야겠다 싶은 책이다. (지금은 이 책을 재정리하기엔 복잡하다...)
2005년 4월 25일에 발생한 일본의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가 발생한 후, 2007년 6월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가 사고조사보고서를 낸다. 그리고 유족과 생존자들이 전문가들과 같이 보고서에 대한 검증을 하고 검증된 내용들을 가지고 ‘JR 서일본’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사고발생의 시작은 일본 국철의 민영화였다. 그 긴 이야기를 이 책은 상세히 잘 담았다.
효율과 성과‧경쟁에서 밀리는 JR 서일본이 성장을 해나간 과정에 안전은 버려지고 있었고, 개인과 현장의 문제로만 인식한 경영진들의 사고가 잘못된 조직문화를 양산하며 더욱 위험과 실수를 감추게 만들었다.
경영진의 교체, 유가족들과의 만남, 사회적 지탄, 전문가들의 제기 등등이 계기이자 기회가 되어 JR 서일본은 변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조직문화는 “달라지겠다”는 새로운 경영진들의 말이나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했다. 개인의 실수가 원인이 아니라 실수자체가 다른 요소에 의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조직적 요소들의 현실적인 변화과정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건 피해자들과 가해기업’의 모습이 이어진다. 사고 현장은 보존되어 공원화되었다고 한다.
시도와 노력은 해피엔딩으로만 끝나진 않는다. 한국에서 발생한 여러 재해들을 떠올리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과 책 속 문구들이 있다.
-사고원인이 조직운영의 결과냐 개인의 주의소홀로 인한 실수냐는 처음부터 쟁점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쟁점이다. 사고원인을 파악하는 것 뿐 아니라 재발방지책을 낼 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임소재를 따져서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것만이 사고원인 조사의 목적이 아니다.
-처음 JR 서일본은 “100% 저희 책임이니 성심성의를 다해 대응하겠다” 사과 인사와 보상방침을 밝힌 후, 운행 중단 중인 구간의 열차를 바로 다음날 재개하겠다고 밝힌다. 유가족과 부상자분들의 이해를 얻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으나 동의한 적이 없다거나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는 항의를 한다. (100% 책임이라고 말이 진심이라면 이런 방침이 나올 수는 없다) 이후에는 유가족 개인에게 사고원인 설명을 하겠다고만 하고, 4.25네트워크에는 설명할 수 없다며, 개별 개별로만 상대하겠다고 한다.
P58. ...내 안에는 두 명의 내가 있었어... 망연자실한 나, 그리고 감정을 완전히 버리고 담담히 사태를 받아들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나. 감정이 없는 내가 망연자실한 나를 데리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어두운 사막을 걷고 있었지. 그런 정신 상태였어...감정이 단절된 냉철함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 환경, 도시재생 등을 주제로 주민의 입장에서, 당하는 쪽의 논리로 지자체와 조율하고 협상하며 활동하던 아사노가 유족이 된 그때. 너무 생생하다.
P115. 제한속도 70킬로미터를 훨씬 웃도는 시속 110킬로미터 이상으로 R304(현장의 커브구간)에 진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과속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즉 그런 비정상적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혹은 그렇게 하도록 방조한 시스템 속에 진짜 ’원인‘이 있는 것이다.
P116. 피해자로서의 호소는 우리 스스로 순수하게, 정도라 생각되는 길을 걸으면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 아사노의 생각인데... 순수하게 라는 말이 어떤 정치세력에 가담하거나 의지하거나 등등을 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앞 부분에 쓰여져있다. 맞는 말이면서도 정치적 투쟁일 수밖에 없는 행동을 굳이 ’순수‘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P131.132. 일근교육의 내용과 기간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반성문과 업무 수칙 받아쓰기, 선로의 잡초 처리, 화장실 청소,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인사하기 등의 일을 시켰다. 상사와의 면담에서 장시간에 걸쳐 욕설을 듣거나 인격 모독에 가까운 질책을 받았다는 직원도 많았다. --> 운전사들의 운전사고나 실수에 회사는 이런 식의 일근교육을 통해 어떤 때는 며칠, 어떤 때는 44일간을 괴롭히면서 임금도 삭감하여 고통을 준 뒤 정신교육을 했다고 주장한다. 정신이 해이해져서 사고가 났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P172. 회장이나 간부가 나빠서 그렇게 되었다고 단순화하는 것은, 회사측이 운전사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려 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조직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책임을 모른 척하고,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그러한 ’꼬리 자르기‘야말로 조직 전체를 무책임한 체질로 만들어져버렸던 것이 아닐까. --> 원인규명과 처벌을 분리하여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장 개인이 아니라 그 직책에서의 역할을 문제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고민지점이다.
P183. 이데가 안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언론보도에 자주 나왔지만...발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철도 회사인 이상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라며 거듭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그 안전의 내용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 경영책임자가 안전을 강조했다는 것이 ’안전‘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실행을 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아데는 직원의 의식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근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P262. 사고조사는...이해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당당히 전모를 밝히는 것이 목표다...사고조사를 수사로부터 떼어내서 경찰과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 --> 조사위원들의 객관성, 피해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의 필요성(이 책에서는 2.5인칭 시점)
P337.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결과적으로 경영효율성을 높인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둘을 양립시키는 것이야말로 철도사업자의 사명이고, 앞으로 경영진이 될 사람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요? --> 유족인 아사노는 이런 말을 했지만, 경영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 이익을 높인다는 말과 동일시 해버리면 성립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경영효율성이 이익을 높인다는 것과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토론 필요할 듯
P349. 앞으로 후쿠치야마선 사고를 모르는 세대들이 더 많아지니, 몇 년에 걸친 반성과 교육을 이미 끝날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일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과 행동들. --> 안전고동관(사고전시, 기록물 등), 상황보고회(정기적으로 유가족과 피해자상황을 현장에 전파) 매년 추모일 즈음에 피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강연 마련, 사고현장 보초 등등
P406. 위험성 평가가 어떤 경위로 무엇을 위해 도입되었고, 왜 해야만 하는지가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지사는 본사의 안전추진부가 하라고 하니까 할 뿐이다. 그래서 확실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현장에 할당량을 정한다. 현장은 현장대로 쓸데없는 업무가 늘어나고 노동이 심해졌다고 느끼며 억지로 하고 있다. 이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참 많다...
이 그림표를 정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싶었다. 알고나면 간단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알아내고 인정하기까기는 간단한 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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