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06.(화)
김태경/웨일북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에 관하여'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연휴에 본 두 번째 책.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다 다른데 나에게 피해자는 '산재.재해.재난'등이 먼저 떠오르는 건 직업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피해자들은 '범죄 피해자'라고 묶여져 있다. 재난이나 교통사고보다 심한 후유증을 초래하는 것이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범죄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훼손되고 안전감을 회복하기 쉽지 않으며 형사사법 절차 관여 과정에서도 불편과 차별을 감수한다고 한다. 트라우마를 가지게 한 사건을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회복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고 말한다.
산재도 재난도 범죄인 경우가 많은게 현대 사회여서 나에게는 크게 분리되지는 않지만, 직접적 범죄와 간접적 범죄라고 굳이 성격을 분리한다면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어느 것이 더 심한 후유증을 가지게 되는지는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약간씩 턱에 덜리는 느낌이 드는 덜컥지점을 몇 개 뺀다면 다시 생각하고 더듬어보게 한 책이다.
산재피해자들의 권리를 위해 여러가지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산재피해자들의 심리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해야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산재예방-보상-제도-책임 등을 주요하게 다루는 단위들은 많으나 산재피해자, 유가족 들을 주요하게 살펴보고 관계맺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곤 했다.
애정이 많았던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한동안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면 진짜 '죽음'이 현실이 될까봐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족들이 많다. 저자는 "상실을 받아들여야만 애도가 시작될 수 있고 애도가 시작되어야 삶의 재건이 가능해지므로" 피해자가 살아돌아올 수 없음을 인지시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한다. 살아있는 유족의 남은 삶을 위해 해야 할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회복에 대한 저항을 보이는 유족도 있다. 아이가 죽었는데, 남편이 죽었는데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죄책감으로 느낀다. 저자가 말하는 "트라우마 치료는 피해자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것"일 뿐 아무리 좋은 이론과 기법도 심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거부하고 투쟁의 거리로 나가는 산재 유가족들이 있기도 하고, 종교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사건유형에 따라 후유증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강도 폭행치상 피해자는 급성 불안증상이 더 강하고, 일반적인 유족의 경우는 급성 불안과 공포보다는 죄책감과 분노, 상실감과 비통함이며 강간 피해자는 급성 불안과 성적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끼고 사회적 고립과 철수가 빈번하다는 등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일반적일 뿐, 피해자의 여러 요인과 범인의 특성이나 상황 등에 따라 양상이 같아도 다르게 표현되기도 할 것이다.
또 많은 피해자가 범죄 피해 중이나 직후 자기 통제감 회복을 위해 무의식적이지만 자동적으로 기억을 억압하거나 감정과 기억을 분리하여 무의식으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너무나 침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침착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다른 것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만 건성이고 자꾸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맞을만 하니까 맞았겠지 라는 말을 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그 경우처럼 범죄에 대해서도 우리는 권선징악적 태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게 결국 피해자 유발론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범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범죄는 범인이 특정인을 표적으로 삼아 범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폭행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든 범인이 상대를 때로도 되는 사람으로 판단해 때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합의, 자본주의의 두 얼굴' 챕터는 언제나 동의되는 얘기다. 피해자들은 합의를 통해 돈과 죄책감을 얻는 대신 피해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이지만 배금주의를 터부시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런 가치를 내면화하는 경우가 다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피해자들도 어떤 경우에는 그 합의가 자신들의 권리라고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더 이상 범인을 미워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걸 더 부추기며 확증적으로 말하는 곳이 '법원'이다. 합의해놓고 왜 처벌을 원하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다. 또 범죄자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반으로 방어권과 절차참여권을 가질 대 피해자들은 형사사법 체계에서는 참고인이거나 잠재적 무고자로 처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산재피해자들에게도 별도로 고소를 하라고 권하곤 한다. 저자가 115페이지에서 쓴 것처럼 고소장을 내지 않으면 인지 사건으로 처리된다. 어차피 경찰이 수사해서 범인에게 벌주는 과정이라 생각하지만 피해자 권리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고소를 해야 피해자인 나에게 기소여부에 대해 재판단을 요구할 수도 있는 항고 재항고 재정신청이 주어진다. 인지 사건은 신고이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리는 당사자로서의 위치만 주어진다. 사실 절차적 공정성이 잘 지켜졌다고 느끼면 최종 결과에 대한 수용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찰이나 노동부나 재판부가 안다면 지금처럼 처리하지는 않을거 같다.
피해자들에게도 증언프로그램이든 뭐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과정이 어떠하고 이런 것들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해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범죄자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판사가 고개라도 끄덕이면 피해자들은 분노와 절망이 솟구치는 감정을 겪게 된다. 고개 끄덕임이 동의가 아니라 할지라도.
공판 과정에서 2가 가해는 사실 대부분 피고와 피고측 변호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곤한다. 성폭력사건일 경우는 더 경우가 심할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성폭력이든 뭐든 범죄피해를 입었을 때 말하지 왜 말하지 않았냐고... 저자가 살펴본 다른 연구들의 결과에서는 피해자들은 자신이 폭로하기에 충분히 안전한 환경이라고 느끼지 못하거나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고 믿어줄 누군가가 없다고 느끼거나, 말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폭로가 지연된다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괜찮다고만 말하는 피해자나 증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괜찮다 이면을 바라볼 수 있기를...어찌되었던 범죄자의 형량이 확정되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자기 치유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챕터4번째인 '용서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피해당사자가 되면 신체, 심리, 신념, 가족, 대인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오는지. 이웃들의 정서와 신념. 곁에서 공감하며 함께 하는 지원자들의 피폐해지는 정서와 연민피로증과 대리외상을 말한다. 그래서 사회의 품격과 질을 고려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기한다.
긴 읽음을 끝냈다. 산재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많이 겹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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