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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2025-9]한낮의 어둠

by 제주돌담 2025. 4. 22.

2025.04.20.(일)
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후마니타스

아주 오래전에 읽은 후 며칠 우울감에 빠지게 만든 책이다. 지난 번에 같은 제목, 다른 내용의 책을 읽고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도 우울함이 남았다. 그런데 왜 또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서.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고민이 있나보다.

스탈린, 러시아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넘버원, 저너머 로 추측이 가능하다.
생각의 다름이, 방법의 차이가, 기술적 논쟁이 곧 숙청으로 이어지는 사회.
그렇게 해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지금을 목죄어야 한다는 논리.
본보기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제점은 덮어야 하고
어디라도 이익을 볼 수 밖에 없는 국제지형에서 체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파업을 중단시켜서라도 저너머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도록 당원들에게 요구하고 그게 안되면 제거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논리와 근거, 타당성을 가지고 설득되고 교육되고 이행된다.

무너진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을 해보았던 세대와 과거라는 탯줄 없이 태어난 이후의 세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달라짐을 보인다.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조차 차이가 있다. 

인민들의 정치적 성숙도에 따라서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민주주의의 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소설 속 후세대 당원이자 네안데르탈인이라 불리는 '글레트킨'이 심문을 할 때도 폭력을 쓰지 않는 이유는 형식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재판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는 점, 루바쇼프도 자신이 재판없이 그냥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도 이런 최소한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양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하고 그 계엄에 대항하는 민중이 나오고 탄핵되는 과정 또한 우리의 정치적 성숙도가 지켜낸 민주주의의 양이다. 딱 그만큼. 

루바쇼프와 이바노프는 구 시대의 동지다. 이바노프는 루바쇼프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그이기에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현 시대의 동지인 글레트킨은 체질의 문제, 잠과 체력으로 강압적으로 몰아부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바노프는 정치적 숙청을 소리소문없이 당한다. 

루바쇼프를 흔든 건. '나' '자아' '1인칭 단수''2-4 나'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혁명과 운동만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이자 세 번째가 되는 체포를 겪으면서 처음 자신과 연민을 느낀다. 혼란스러움.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은 이들을 받아들인다.

루바쇼프에게 강요된 마지막 임무는 침묵 속 죽음으로 조직과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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