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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2026-1]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제주돌담 2026. 1. 18.

2026.1.17.(토) 
무라카미 하루키/홍은주 옮김/문학동네

새해 첫 책. 장편소설답게 작가 후기까지 767페이지다. 제주 수련회 마지막 날 다 읽었다.
다들 깨기 전이고, 혼자 있는 방에서 아침햇살이 꽤 따뜻한 기운을 내뿜고 살짝 열어둔 창문 틈으로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1월의 아침에 침대에서 이 책을 읽으며 휴가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있고 그림자와 내가 함께 했던 1부, 그림자와 내가 분리되어 그림자가 나로 살아가는 2부, 내가 도시의 벽속에서 살아가다 그림자와 합쳐지기 위해 다시 도시의 벽을 나가는 3부. 이야기는 현실과 도시를 오가고, 17세의 소년과 현재를 오가고, 그림자와 실체를 오가며 이어진다. 사람 이름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여전히 나는 모른다. 

17세의 나와 16세의 그녀가 만나고 마음을 쌓아가고 편지가 오고가며 만들게 된 '그 도시'. 그녀는 거기서 살고 있다고 했고 지금 나를 만나는 그녀는 그림자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진 그녀는 찾아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로 나도 들어갔다. 원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간절히 원할 때만.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림자를 버려야 했고, 눈에 상처를 내고 꿈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녀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하는 도서관 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모른다. 나만 그녀를 안다. 도시는 춤,노래,시간이 없다.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고 안정적이다. 문지기가 도시의 유일한 문을 지키고 누구도 들여보내지도 내보내지도 않는다. 그 도시를 처음 말한 것은 그녀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질문과 이야기가 더해져서 도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년의 그림자가 죽어가며 여기서 나가자고 한다. 실체로부터 떨어진 그림자는 오래살지 못한다는 걸 소년도 안다. 같이 도시를 나가기로 결심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소년은 그림자만 내보낸다. 자신은 아직 16세의 그 소녀를 버리지 못했다. 도시의 소년은 남들이 놀랄만큼 잘 적응하고 익숙해지고 소녀와 매일을 보낸다. 흐트러짐없고 변화도 없고 시간이 흘러가지만 시간을 알 필요가 없는 도시에서는 시간이 의미없음을 알려주기 위해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다. 

벽을 나간 또 다른 나는(나중에 그림자로 확인되지만) 사회생활을 꾸려가지만 여전히 16세와 17세의 소녀와 소년을 잊지 못하고 사람들과 섞이지도 않으며 혼자 살아간다. 그렇다고 외톨이는 아니다. 책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다 도서유통일을 그만두고 직장 후배인 '오키'가 구해준 후쿠시마의 시골 도서관에서 관장을 뽑는 곳으로 가게 된다. 오키는 소년의 그림자인 나에 대해 '숲의 수목' 같다고 전 도서관 관장인 '고야스'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림자가 없는 고야스 씨는 40대가 넘은 소년과 사서인 소에다 씨에게만 보인다. 어쩌면 옐로 서브마린 소년에게도 보였을 수도 있지만. 시골 도서관장으로 일하며 육체가 없는, 그림자 없는, 영혼이라는 의식상태로 있는 고야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고야스 씨의 무덤에서 꺼낸 그 도시 이야기를 특별한 아이였던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듣고 도시로 가고 싶어한다. 그 사이 40대를 넘어선 소년은 시골마을에 혼자 커피숍을 운영하게 된 여성과 감정을 쌓아가게 된다. 16세 소녀 이후 처음으로 "기다려도 되냐"는 말을 하게 된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도시에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였다. 현실 세계에서는 적응 할 수 없는, 그러나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꿈을 읽는 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 덕분에 도서관장인 나는 그림자임을, 16세의 소녀를 다시 만나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되고 꿈읽는자의 자리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이어가게 된다. 벽을 뚫고 나가면 그림자가 안전하게 받아줄 것이라는 것을 믿으라고 한다. 그림자 곧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 내가 절실하게 원하면 여기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옐로 서브마린소년은 거기에 갇혀 읽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신의 능력을 가치있게 쓰고 싶어한다. 변화가 없고 말할 필요도 없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곳. 필요한 역할만 하면 되는 곳. 그곳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어한다. 17세의 소년은 이제 변화를 원한다. 옐로 서브마린소년이 보여준 수 많은 책과 지식에 즐거움을 다시 알게 되고 노래를 떠올리게 되었고 가슴 속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림자와 하나가 된 소년이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고 살아가는지는 모른다. 책은 현실로 돌아오기를 결심하고 촛불을 끄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그 도시와 벽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공간 하나쯤은 있을 거 같다. 그곳에 오래 갇히는 사람도 있고 일상이 힘들 때 그런 공간으로 잠시 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중적 삶을 살기도 할 것이고.
나는 누굴까. 내가 존재하기 시작하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은 나의 의지인데 난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어떤 즐거움? 의미? 가치? 그도저도 아니면 그냥 살아가는 것? 나를 위해 사는 걸까? 나는 내 그림자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걸까? 내 그림자를 신경써 본적이 있긴 한가? 나의 실체는 무엇이고 나의 그림자(부캐, 분신...)는 무엇일까? 실체인 나는 보여지는 것일 뿐 마음 속 깊이 있는 진짜 나는 그림자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그러면 죽을 때 후회할 거 같다...)

여러 생각이 얽힌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읽게되면 그때는 다른 생각이 들까?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지식을 얻고 싶을 뿐이다. 무슨 쓸모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나 문지기는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개념인 것이다."(90p)
그 도시는 지적 호기심, 즐거움, 갈등, 불안감, 재미, 들뜸 같은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지기가 호기심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곳은 쓸모로만 인정되는 곳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참 현실같기도 하고 현실과 다르기도 하다고 난 느꼈다.

소설 속 16살의 그녀는 17살의 그에게 "분석이나 충고 따위 하지 않고 말없이 나를 지지해주는 면을" 좋아하는 거 같다(107p)고 말했다. 지지해주는 것도 각자가 원하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진짜 힘들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게 제일 좋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