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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2026-3]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by 제주돌담 2026. 2. 1.

2016.1.31.(토) 
진은영/마음산책

내가 들은 라디오의 책소개 프로그램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나쁘지 않았다.

책은 총 28개의 글이 실려있고 뒤로 갈수록 글이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들었고, 28개의 글에는 29권의 책을 근거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책도 있었고 내가 읽은 책(기억나지 않는 내용이라도)은 단 4권 정도였다. 다독하는 작가이자 시인이신듯. 참고이자 근간으로 제시된 책의 저자들은 동유럽, 러시아 출신들도 꽤 있었고 시대의 흐름에 이리저리 실려서 다니기보다는 그 흐름에 고통받은 이들이며, 여성이 많았다.
그래서 그 시기의 칼럼이 '다시 본다, 고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고전'은 어떤 기준이었을까 궁금했다. 시간이 오래될 수록 고전이라고 보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고전이라고 하기엔 가까운 시대의 작품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수가 정해져있는 칼럼을 수정하여 실어서 그런지, 글 중에 일부는 "갑자기 이렇게 연결된다고?" 싶은 부분도 일부 있었다. 급작스런 점핑이랄까 무리한 내용연결이랄까 뭐 그런 아쉬움도 아주 조금 있었다(느낌상). 깊게 들어가려고 할 때 멈춰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제목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일수도 있고,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한 얘기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1판 1쇄를 읽었는데 다른 책의 저자이름이 오타로 나왔는데 이후에 나온책에서는 수정된 것을 확인했다. 그외에 빠진 단어가 있었는데 그건 수정됐나 궁금하네. ㅎㅎ (51P. 첫 문단의 아래 두번째 줄.  낯설고 섬뜩한 기분의 한가운데서 현존재는 자신이 죽을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서 나아간다는것이다.)

행위하기가 사라지고 기능하기가 그것을 대체할 때 대화와 설득의 공적영역이 사라져버리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결정권자가 있다는 건 망상이라고 아렌트는 <인간의조건>에서 말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그의 마음이 설령 진심일지라도 정치는 실종되고 만다. 그가 유일한 진리의 담지자를 자처하며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대화하고 행위할 가능성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는 행위도 사라지고 유용성도 사라졌다. 

<존재와시간>의 하이데거는 많이도 들어봤고 읽어보려고 노력도 해본 책이자 저자이다. 그러나 넘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 학자이지만 자신이 통찰한 진실을 그 스스로 잊어버리고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 나치에 협력한 철학자. 학살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근본적인 불안은 대상이 모호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특정 대상을 위험한 것으로 지정하고 모호한 고통을 확신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때문"에 대상 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타인에 대한 탄압, 배제, 차별을 한다고 해석하게 했던 그가 보인 태도는 여전히 그의 철학을 우리가 이야기해도 되는지 반문하게 한다. 일제시기에 친일을 했던 학자나 정치, 예술인들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들이대는 기준을 생각해보게 한다. 

또 여러 글에서 보이는 사회재해, 실종, 죽음, 고통, 재앙에 대한 문구들은 기록해놓고 싶다.
P61. 종종 사는데 지쳐 힘이 빠질 때 바닥에서 나를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은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유한성의 자각이 아니라 오래된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다. 
P100.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기에 아이에게 아빠가 살아 있다고도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에게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을 되풀이한다. 아빠는 집에 오실 수가 없어....... 남겨진 이들이 느끼는 모호한 상실감은 그들이 겪는 상실의 사건 자체에 또 다른 고통을 더한다.
P101.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라진 사람들처럼 생사의 정확한 증거조차 찾을 수 없는 실종자들이 수천 명 생겨난 나라. 이런 땅에서 애도는 시작될 수조차 없었다. 
P123. 새롭게 기억하는 일을 통해 이 여성은 자기 삶의 폐허 같던 장면에서 살아갈 용기와싸울 힘을 얻은 것이다. 기억은 "일종의 갱신" (새롭게 당시의 장면을 해석하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기억을 갱신함을 통해 살아가게 하기에 새로운 해석이 먼저 되어야 한다)
P149. 베유는 부재하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P188.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부모의 시체를 먹는 관습, 화장하는 관습, 서로 그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하는 이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평범하게 세상에 맞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남겨본다. 
P97. 그는 평범함을 유지하려고 애써왔다. 평범함은 최소한ㄴ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우리가 그 상태를 지키기 위해 인생의 한순간도 교활하거나 타협하거나 아첨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순간을 조글밍라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P129. 인간은 항상 타인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축과 후퇴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물러섬과 드러내지 않음은 타자를 배려하는 미덕인 한편, 드러내기 문화에 반하는, 가장 현대적인 저항의 태도가 된다.
P130.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멈추는 것 역시 물러서기, 드러내지 않기의 미학이다.
P141. 카뮈는 무언가 시도할 때 '성공할 거라는 희망'의 환성을 제거하라고 말한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이 확실한 순간에도 돌을 밀어 올려라. 
P143.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패배할 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P162.163. 몽상은 여유 없는 곳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몽상가는 어떻게 정성스러운 손길과 새로운 눈길을 가지게 되는가? 무엇보다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행동을 제거해야 한다. 
P171. 판덴베르흐가 말했듯 "해결의 희망이 없는 문제들의 해결을 계속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의 휴식을 즐기는 기분으로 소설 한편을 썼다고 한다. 막간을 이용해 고된 글쓰기의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일과 휴식이 일치한 인생을 미친듯이 살며 대작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신나게 노는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쓴 결과가 소설 '올랜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안식년을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쉬어야 하나를 생각하는데 "하던 일은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 는 게 나는 더 이상하다. 그래서 울프의 저 휴식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 좋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에서 죽어가던 하인의 몸이 녹고 아주 작게 코고는 듯한 소리를 듣고 매정한 주인이 느낀 '각별한 기쁨'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게 되는 결과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가 그렇게 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작은 기쁨들이 인간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게 될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