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8.일요일.
희정/한겨레출판
'장례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라는 말이 표지 제목 좌우에 적혀있다.
책 표지가 처음엔 이상했다. 죽음을 어둡게만 표현되지 않게 하려했다는 정도로 이해했을 뿐이다. 굴곡이 있는 또 중간마다 꽃이 있는 삶이라는 뜻일까, 죽은 다음 망자도 사별자도 이런 길을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모르겠다. 여튼 이질감이 있었다.
책은 4일 정도에 나눠 읽었다. 밀도가 높은 내용이라 술술 읽혀지지는 않았지만 책 읽기가 어렵거나 힘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빡빡한 내용이 그만큼의 시간을 요구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빠도 떠올랐고, 친구의 장례식도, 산재와 시민재해 피해자들의 장례식도 떠올랐다. 산자와의 관계로 가게 된 조문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간 산재나 시민재해 피해자들의 죽음 이후 모든 것에 대해 권리가 법적 가족에게만 주어지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고, 상업화된 장례문화, 다를 거 없는 동일한 절차같은 장례식도 바뀌길 바라던 터라 책의 많은 내용이 공감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장례식을 산자이든 죽은자이든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채 간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고 묵념은 할 수 있었지만 ... 또 장례를 복지의 개념으로 사회가 보장한다는 것도 고려해보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경우 정부지원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장례를 제도적으로 보장된 애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는데 느닷없이 보편적 복지라는 이유로 '윤석열'이나 '전두환''박정희'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보편적 복지로서의 제도적 보장을 말하는 이들이 생겨날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ㅜㅜ
장례라는 형식적 절차가 오히려 애도를 없애버리는 과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와 달리 죽어서 권리와 존엄을 요구하는 공간이 되는 장례식도 많았다. 아빠의 죽음은 너무 갑자기라 이별을 생각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장례식을 해야 했다.그래서 더욱 급하게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5일장을 선택했다. 이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선택은 지금도 너무 잘했다고 생각된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작가는 유언, 죽음, 장례, 삶의 모든 것에 '혼자' '고립'이 아니도록 을 강조한다. 작가 개인적 바람이자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가 달라지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기본이 그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유가족'이라는 말로 고인을 떠난 가족만이 강조되지 않고 '사별자'라는 단어로 법적 가족구성원이 아니어도 고인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를 담아주는 것은 좋았다.
장례 노동에 배어있는 성 차별, 프리랜서화, 경쟁적인 서비스시장, 판매 중심으로 얻어야 하는 이익, 전통과 변화. 또 장례 노동을 하는 이들의 마음과 공감, 죽은 존재인 사람에 대한 예의, 죽은 다음에라도 없어지길 바라는 위계와 배제, 애도방법... 현실과 고민이 담겨있다.
장례방법도 결국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니만큼 고인과 사별자가 어떻게 이별하고 기억하고 애도하기를 바라는 가가 제일 중요할거 같다. 수의는 무조건 삼베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고 화장은 귀족과 양반들만 가능했던 고려시대도 있었고, 집이 아닌 곳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했던 때도 있었고, 여성이 상여를 메고 상여소리도 하던 섬도 있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채비, 그리다 빈소, 나눔과나눔, 공영장례조례, 무지개정류장, 공동체 장례도 있다. 장례지도사, 의전관리사,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들없이 애도하는 장례도 가능하다.
작가의 글은 밀도있고 다층적이고 여러 방면으로 뻗어가며 고민의 고리를 이어간다. 장묘업을 하는 이에 대한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다. "단순하게는 땅 파는일, 무섭게 보면 시신을 묻거나 꺼내는 일, 신비롭게 보면 땅의 기운을 아는 일." 이렇게 표현하는 희정 작가의 세심함과 다층적 시각과 표현에 또 감탄했다.
P158. (장례지도사 시절 이해루는) 자신이 유족의 자리에 서자, 이별과 애도는 타인이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례 3일은 짧아요. 솔직히 그건 시신을 처리하는 기간이지, 사라믇ㄹ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애도는 장례이후에나 할 수 있게 되는거 같아요."
P161. 장례라는 것이 결국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 삶이 반영되지 않은 장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나와 고인의 관계, 그 사이의 느낌 감정 태도를 반영하고 싶은 마지막 순간
P188. 아벨이라는 백발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문이 열리는 것처럼 여기서 해야 할 일을 마쳤으면 돌아가는 거죠. 간단한 일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얄궂겠어요."
-> 철학적 고민이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뭘까. 그냥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고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의미있게 고생하면 더 좋은거긴 하다. 근데 왜 살아내느라 고생해야 하느냐... 같은 꼬리물기 생각은 자칫 허무주의의 문을 열기도 한다.
P207. 오늘날의 상주란, 가문을 이어받는 자리가 아니다. 떠난 이와 나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리에 가깝다. 내가 보내주어야 한다. 내가 책임지고 싶다. 잘 보내주고 싶다.
P232. 이 세계는 모든 곳을 시장으로 만든다. 전문가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두려움은 시장에서 구매를 추동하기 위해 활용된다. 장례가 상업화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장례가 돈이 되는 사업이란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정동이 시장에 들어섰다. 아니 시장에 갇혔다.
P245. 추모식은 장례를 대체하는 방식인데, 핵심은 두가지예요. 하나는 떠나보내는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 두번째는 상실감과슬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자리.
P258,259. 잘못된 죽음이란 없다 죽음을 숨기는 일은 사실 삶을 숨기는 것이다
P263. 기억은 죽음 뒤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기억해줄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들이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한다. 사회가 시간과 비용을 내놓는데 인색한 죽음은 쉽게 지워진다.
P283. "우리가 살아오며 지닌 다양한 정체성이 유지되고 인정되고 지켜지는게 존엄인거고. 특정한 시선이나 외면으로부터 상대의 고유함을 지켜주는 과정도 존엄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사후에도 지켜져야 죽음이 존엄할 수 있게 되는거죠."(나눔과나눔 박진옥) 존엄은 단지 고인의 몫이 아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는 애도할 권리로 이어진다.
P327. 저한테 연대는 나의 안팎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이거든요. (무지개정류장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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