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7.(화) 설날
알베르 카뮈/박언주/열린책들
며칠간 나를 고생시킨 책이고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읽어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고통. 알듯 하다가도 모르겠고, 이런거구나 생각했는데 왜 카뮈가 이런 예시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그랬다. 시대가 다르니 그럴수도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은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에세이라고 표현해놨던데 철학서라는 느낌이 훨 강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살과 우리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자살은 다름을 전제하고 읽어야 하는 면도 있다.(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책 뒤의 해제는 본문을 다 읽고나서 봐야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관련된 책이나 다른 이들의 블로그를 뒤져가며 고민한 책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 세계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설명하고 체계화하며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간과 의미를 보여주지 않는 세계는 충돌한다. 부조리는 여기서 생긴다. 인간과 세계의 충돌. 여기서 카뮈는 애초에 인간이 찾고자 하는 의미란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거 같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의미가 있어야 살아가고 노력하고 열심일텐데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 세계는 어떤 의미인지, 이 행동은 어떤 의미인지가 없는데… 내가 살아간다는 건 뭐지??? 를 묻게된다. 습관처럼 일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순간에는 알지 못하다 어느순간, 부조리에 부딪히고 부조리를 겪게 된 인간은 고민하게 된다.
'카뮈의 부조리'는 일상에서 사용한 부조리 라는 개념과 다르다. 철학적 개념으로 재정립했다고 봐야 한다. 그 부조리라는 상황에 부딪힌 인간은 좀 덜 괴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독립된 두 존재 중 하나를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도피(회피, 도약, 비약)를 선택한다.
종교나 신에 의탁하여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없고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 절대진리를 찾기도 한다. 그것이 삶의 가치관이 되고 의미가 된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살을 선택한다.
끝까지 부조리라는 상황을 끌어안고 도피하지 않는 인간은 절대자유를 가진다. 그렇다고 카뮈의 부조리철학에서는 그런 인간이 더 도덕적으로 높은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은 부조리한 상황을 회피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도덕해보일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연애를 지속하는 돈후앙은 상대여성이 바뀌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그럴때마다 그 여성은 자신만이 돈 후앙을 만족시켰다고 생각하지만, 돈후앙은 모든 여성에게 만족했다. 사랑으로...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에 충실하게 모든 것을 바치는 삶. 현재 가능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소진한 삶이기 때문이다.
시지프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의미한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알베르 카뮈가 보기엔 시지프는 무의미한 노동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무의미한 노동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의미, 희망,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살아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카뮈는 말한다. 그것이 절대자유이고 그 자유마저도 의미없음을 아는 것이 부조리한 인간이다. 그래서 카뮈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스스로 자신에게 열려있는 여러 선택지 중에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살아가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살아내는 사람이니까.
철학이 무서운 시기가 있었다. 그 끝이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관계를 규정하는 가치관을 세우는 과정인데 한국사회에서 고등학교때까지 철학을 배운적이 없었다. 대학에서 만난 철학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좌충우돌하며 갈짓자를 그리는 고민을 하도록은 하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 세대도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현실에,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에도 버겁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다시 철학을 생각했다.
p30. 세계의 이 두꺼움과 낯섦, 그것이 바로 부조리라는 점이다.
-> 세상이 미리 만들어놓은 윤곽, 형태,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가 어느날 "왜?"라는 순간을 만나고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 카뮈는 그때를 "세계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p131. 표현을 할 수 없다면 모른다는 뜻이거나, 게을러서 대충 겉핥기만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깊게 고민할수록 설명을 더 잘하게 되는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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