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21.(토)
롤랑 바르트/김진영/웅진씽크빅(이순)
1977년 10월 25일. 엄마(앙리에트 벵제, 84살)의 죽음. 그날 이후 롤랑 바르트는 애도일기를 썼다.
그가 쓴 일기는 이후 다른 이가 엮어서 출판했고, 일부는 다른 서적을 집필하는데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는 메모를 수시로 남겼고 이 애도일기는 그 메모들을 모은 것이다.
애도일기 첫번째는 자주 글을 남겼던 시기, 후속일기는 그 이후 1주기까지, 이후에 쓴 일기는 1주기 이후 2주기 전까지 시기의 글이다. 이 책은 메모를 엮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글이라고 하기엔 매우 짧다. 그럼에도 첫번째 애도일기를 읽으며 감정이 움직였다. 죽음을, 애도를, 기억을, 추모를, 나를 생각하기도 했다. 후속일기와 이후에 쓴 일기로 넘어가면서는 비슷한 감정이면서도 감정이 느슨해지고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의도성마저 느끼게 되었다. 격렬한 감정의 순간만을 남겨서일까...
어떤 메모에는 년도가 남아있고 날짜만 쓴 메모도 있다. 책 뒤의 해설을 읽으면 메모가 하나의 글로 어떻게 엮어졌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독자들에게 매서운 '질정'을 바란다는 옮긴이의 말은 낯설긴 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서... ㅎ
p31. (1977)10.30.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 너무나 사랑한 그녀, 어머니지만, 그녀가 나의 모든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죄책감으로 드러낸 순간
p50. (1977)11.9.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부재하다는 추상적 느낌, 부재의 고통이다.
p60.(1977)11.15.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킽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 사회적 죽음이 그러하다.
p61.11.15. 완전히 망가져버린 느낌 또는 불편한 느낌. 그러다가 때때로 발작처럼 갑작스럽게 습격하는 활기
-> 죽음이후 느끼게 되는 살아있는 자의 상태. 혼란과 죄의식과 정리하는 마음과 미안함 등
p70.(1977)11.21.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 슬퍼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편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여야 한다는 인식. 우리 사회는 슬픔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코드화했다고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p77.(1977)11.26. 나를 경악속으로 빠뜨리는 것이 있다: 내 슬픔의 변덕스러운 특성.
->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은 불안을 만든다. 주변의 시선과 나의 인식이 만난다.
p78.11.28.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사랑한다는 것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곧 그가 될 수는 없을텐데...
p81.11.29. 슬픔은 원래 그런 거라고 AC는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앎의 주체, 수렴의 주체가 된다. 나는 그 주체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나의 슬픔이 수렴되는 것, 일반화되는 것(키르케고르)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그건 마치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훔쳐 가버리는 것 같아서다.
-> 나의 슬픔이 특별한데,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면이 있는데 일반화되면서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면도 있다.
p90.12.8.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p105. 1978. 2. 18. 애도의 슬픔은 변하지 않는 슬픔, 특발적인 슬픔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이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슬픔은 지속적으로 머무는 슬픔이 아니기 때문에.
p1978.6.20. 어떻게 이 싸움을 자기 안에 갇힌 폐쇄적인 삶이 아니라 그 어떤 예지적인 삶으로 흘러들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애도의 변증법이 풀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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