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15.(일)
임지현/휴머니스트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이 책을 도서관에서 보고 뽑아올 때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뻔뻔함, 침략전쟁을 벌인 뻔뻔한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 일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거 같다. 목차도 자세히 보지 않고 뭔가에 홀린 듯 그냥 집어왔다.
올해 다시 여행을 간다면 폴라드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읽어서인지 폴란드를 정말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7년 전 폴란드 여행을 갔을 때 의무감처럼 앙시비엥침을 가서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구석구석 돌아보며 풍경과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 느꼈었다. 폴란드 역사를 그때도 공부하고 갔지만 또 다른 시각의 역사를 읽은 느낌이다. 폴란드만이 아니라 동유럽의 딜레마로 쓰여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이야기도 여행가기 전이라면 다시 봐야할 거 같다.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에 있는 점령 박물관/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안제이 바이다의 ‘카틴’ 2007년작.) 일본을 여행할 계획은 없지만 만약 간다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올림픽경기장을 만든 ‘단게 겐조’가 대동아건설기념관에 담으려 했던 일본제국의 웅대한 비전을 확인해보고 싶긴 하다. 끝내 대동아건설기념관을 만들지 못한 그가 만든 평화기념공원의 동선은 신사참배 동선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이건 비꼬는 것임)
홀로코스트. 누구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사실 그 자체. 그래도 현실 세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비교되고 뒤집어지고 연결되면서 왜곡되기도 한다. 목차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다 읽고 정리하는 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남기고 싶은 줄글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위자가 나는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말. 아주 평범한 얼굴을 한 수동적 공범자들. 어쩔 수 없이 한 행동 때문에 시간이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끝까지 자신을 변명하고 자신은 오히려 (현실과 역사의)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해자였으면서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이다.
그 현실과 역사를 짜깁기 하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면 나 편한 대로 생각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은 비판하지만 한국의 베트남 전쟁참가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침략은 비판하면서 일본의 침략과 탄압은 비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침략국의 국민은 하나로 싸잡아 평가된다. 여전히 히틀러나 나치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오스트리아는 그럼에도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에서 독일과 소련의 침략에 대한 평가가 국가별로 다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기존의 편견에 편승한 역사적 판단도 있다. 히틀러의 침략과 유대인절멸 살인이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서가 아니라 백인.남성.유럽 중심의 세상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왜곡만 있는 건 아니다. 피해자들의 연대도 있다.
이 책은 과거의 행위가 역사가 될 때 그 시기에 행위를 하지 않은 현 세대에게 과거를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고, 그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당사자’만이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남은 유가족이라 하더라도 유가족이 하는 용서는 자신들의 고통에 대한 용서일 뿐, 피해당사자의 몫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현 세대는 그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할 책임은 있다.
p33. 역사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힐베르크의 에세이는 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특정한 역사 사건에 관한 공식 문서 기록과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증인들의 목소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역사적 진정성을 갖는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p35. 실증주의도 이데올로기다. 기억 전쟁에서 실증주의는 특히 ‘아래로부터의 기억이란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정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힘있는 가해자와 관련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없는 희생자들이 가진 것은 대개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일본군위안부 관련 일본군의 공식문서가 없다고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힘을 위해 희생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을 제기)
p79. 조지 모스의 지적처럼, “전사자 숭배는 국가라는 종교에 순교자를 제공했고 죽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는 국가적 경배의 신전이 되었다.”...전사자 숭배가 제국과 식민지, 독재와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국가에서 당연한 듯 자리 잡은 것도 민족이 지닌 제사공동체적 성격 때문이다.
p91. 희생자 대 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는 역사 현실의 복합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드바브네 사건은 역사의 행위자들이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p103.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의 경우 가해의 역사가 피해의 기억으로 바뀌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본인이 인류 역사에서 유일한 원자폭탄 희생자였다는 자명한 사실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희생을 자국의 전쟁범죄와 가해행위를 상쇄하고도 남는 희생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p105. 총력전체제는 싸우러 나가는 자와 이를 전송하는 자 사이의 일체감을 먹고사는 괴물이었다. 따라서 전쟁의 희생자는 총력전체제의 공범자이기도 했다.
p122. 모든 희생자들을 국적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이란 존재를 지워버린 것이다. 홀로코스트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 희생자들은 그들이 속했던 국적에 따라 겨우 기억될 수 있었다.
p156. 광주에 대한 사회적 기억은 신군부 살인자들을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 이 평범한 청년들이 왜 아무 의심없이 사살 명령을 이행했는가를 묻기 시작할 때 책임감 있는 기억으로 바뀔 것이다.
p186. 인종주의는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다... 듀보이스는 바르샤바를 방문한 덕에 인종주의가 피부색의 문제라는 ‘사회학적 고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유대인과 흑인은 이처럼 사애방의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고통과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p195. 아프리카에서 독일이 행사한 식민주의적 폭력은 나치가 동유럽 슬라인에게 자행한 폭력적 지배와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가. 세세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많지만 식민주의의 경험과 홀로코스트의 연관성을 더는 부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p200. 1905년 나미비아에서 통과된 ‘부성애적 징벌법’은 독일이주민에게 계몽을 빌미로 원주민을 채찍이나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p204. 에매 세제르의 촌철살인을 빌리면, 그들은 히틀러가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야만적인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 문명화된 유럽의 한복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유별나게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구촌이 기억하는 제노사이드가 서구 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p215. 1948년 네덜란드가 주관한 바타비아(자카르타의 옛 이름) 재판에서는 1944년 당시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이 민간인 수용소에 억류된 네덜란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내몬 일본군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전시 민간인에 대한 성적 착취와 폭력을 심판했다기 보다는 감히 아시아 남겅이 백인 여성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한 인종주의적 보복의 성격이 강했다. 흑인 여성에 대해서는 성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이 백인 여성에 대한 흑인 남성의 성폭력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백인 여성에 대한 유색인 남성의 성폭력은 그것이 성폭력이어서가 아니라 인종의 금기를 깨뜨리는 행위이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이는 백인 남성의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읽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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